결과가 중요한 세상. 그건 과거에도 그랬을 것이고 내가 있지 않은 미래에도 그럴 거라는 변하지 않는 별자리처럼 단순하면서 가슴에 박힌 못처럼 사라지지 않을 애증의 진리.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순간이 있다면 기억해보자. 누군가 당신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화려한 퍼포먼스를 내는 일에 비해 다소 관심을 덜 받을지라도 어떤 형태로 나의 삶을 이루어가는 것이, 화려한 일보다 때로는 필요한 일을 한다는 것이 주는 위안이 자부심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 나는 믿는다.
항공사에서 일을 하는 날에도 그랬다. 법과 규제, 체계와 인간성 사이에서 전쟁을 치르던 하루하루에 나는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공사를 대표하는 화려함을 묵묵히 지탱해주는, 나무의 뿌리와 같은 일들을 해냈다. 20대에서 30대 초중반, 겉으로 보이는 것이 인생 전부를 대변한다고 믿을 만한 시간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존재를 스스로 알아주고 묵묵히 매일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FA 시장에 나와 내가 처음으로 맡은 역할 또한 나무가 아닌 ‘뿌리’에 해당하는 일들을 했었다. 밤새고 밥을 못 먹고 일을 했고 몸을 상하게 하며, 일반적으로 보장된 안전망에 벗어나 일을 했었다. 참 미련하고 참 애처롭게 그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 순간들에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작은 흔적들을 조금씩 남기는 것이었다.
부모님 아프고 당장 급전이 필요해 4잡을 하던 날에도, 다른 사람 눈에는 나란 존재는 이름이 아닌 ‘인간’ 모습을 한 로봇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개미굴 같은 좁디좁은 공간에서 ‘나’는 그저 사업장에서의 흔하디흔한 부품처럼 일을 했었다. 아직도 잊지 못 한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내일’에 대한 대화를 꺼낸 순간, 돈 앞에서 무의미해진 인간성을 답변으로 듣게 된 날. 알게 되었다. 사진이든 기록이든 내가 몸과 영혼을 갉아 일을 해온 곳에서의 최선을 남겨야, 나의 내일에 스스로 나의 희망을 만들 수 있음을.
며칠 전 동료들이 담배를 피던 곳에서 신음이 저절로 나오는 노가다를 해대는 와중에, 그런 모습을 지켜만 볼 뿐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지만 그 중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더라. ‘입사할 때는 깨끗하던 작업복 바지가, 무릎 부분은 실밥이 터져 찢어지고 주머니 단추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처음이 아니어서 그런 걸까. 나는 자체적으로 알아서 해석하기로 했다. 비 오는 날이면 비를 맞아야 하고, 눈 오는 날이면 동네 전체를 제설해야 하고, 무더위가 내려쬐는 날이면 마른 오징어처럼 납작하게 기면서 더위와 사투해야 하는 그 열약한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업에 대한 경력직’ 나는 스스로 말한다.
나는 열심히 일을 했노라. 나는 필요한 일을 했노라. 그거면 됐다.
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