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 나에게 회사생활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사람’에 관한 것도 있지만 ‘이상한 집착’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사실 누군가(또는 법인)에게 월급을 받고 어찌 보면 ‘노동’을 제공하는 입장에서 흔히 하기 쉬운 착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내고 그 안에 스스로 갇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본다면, 나 스스로 발목을 잡는 꼴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바로, 특정 업무 소프트웨어 관련된 것이다. (여기서는 소프트웨어로 선을 긋지만 비유로 생각한다면 다양한 것들로 치환할 수 있다. 결국 그 의미는 같기 때문에)
언젠가 자신을 불러주는 회사로 들어가서 일을 시작해보면 특정 소프트웨어(또는 시스템)을 만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이것을 왜, 어떤 목적에서, 어느 정도의 도구로서 사용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를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성과 또한 이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나의 업무적 책임이 해당 소프트웨어와 관련되어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착각하기 시작한다.
’00씨는 기획 능력이 좋구나? 문제해결 능력이 우수하네? 어떻게 이런 인사이트를 뽑아서 해결한 거야??’
사실 스스로는 정답을 알고 있다. 특정 소프트웨어 덕분에 자신이 인정이라는 것을 받기 시작한다는 걸. 어느 순간 이 능력(?)은 나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남들은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그 한계에 가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궁금해하는 다른 사람이 있으면 괜히 경계를 하게 되고, 심지어 자신의 후임이 들어와도 기본적인 매뉴얼은 알려주되 자신이 주로 애용하는 기능에 대해서는 쏙 빼놓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적지 않게 이런 경우를 목격했다.
한 회사, 한 울타리 안에 있으면 자신이 대체불가한 사람이 되고 그 소프트웨어 한에서는 박사 학위가 있는 것처럼 거들먹거린다. 언젠가부터 소프트웨어의 존재 목적을 잊어버리고, 그 소프트웨어를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게 사용하는 실력을 키우기 위해 일 아닌 일을 해낸다.
하지만 자진해서 시스템을 갖춘 회사에서 나와보니 알겠더라. 사실 그 소프트웨어는 조금만 시간이 있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어쩌면 나는 ‘일’이 아닌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을 키우는 데에 후배들을 닦달한 건지 모른다.
심지어 FA 시장, 사업, 이직 등 어떤 상황이든 ‘나는 그 소프트웨어를 잘 활용합니다’, ‘나는 그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회사에 큰 영향력을 미친 적 있습니다’라는 등 제3자가 들으면 시큰둥해할 만한 이력을 가지고 ‘에고’가 가득해서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과거 어느 날 어린 나 또한 그런 적이 있고, 심지어 반대로 면접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그런 후보자를 만난 적이 있다.
차라리 그놈의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 대신, 그 시간에 조직의 목적을 알고 후배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후배에게 주면서 속된 말로 ‘사람을 부리는 능력’을 배양했다면 어떨까 싶다. 적어도 열약한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통솔해 본 적 있는 사람이 다른 조건들도 맞다면 훨씬 더 크게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겠나.
소프트웨어가 있고 사람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있고, 특정 사명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종의 도구로서 소프트웨어가 존재한다. 후배에게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더 큰 세상을 만들도록, 동료에게 소프트웨어 부심을 부리지 않도록 종종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겠나 싶다.
(사실 부심을 부리고 싶은 그 소프트웨어, 몇 가지 기능을 알려주면 부심을 부리는 사람 대신 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노마드해리 스토리프레스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