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하지만 그의 업적, 생애, 어록 등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독립운동가 명성을 날렸지만, 지금에 와서는 평생을 교육을 통해 우리민족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하며 헌신해온 그의 인생을 두고 많은 분들이 ‘시대를 앞 선 교육의 선각자’ 라고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는 , 우연에 가까운데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우연을 우연으로 흘려보내지 말라.’ 그래서 이번 기회에 강남 압구정 도산공원 입구 옆에 위치하고 있는 안창호 기념관 소개, 도산 안창호 선생님 생애, 어록, 업적, 도서, 대중매체 순서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육을 통해 우리민족의 힘을 기르고자 했던 도산 안창호 기념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사상과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탄생 120주년과 순국 60주기를 맞이하여 1998년 11월 서울 강남 압구정 도산공원 내 세워졌습니다.
현재 ‘도산 안창호 기념관’ 관리 및 운영은 사단법인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에서 도맡아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구조는 지상 1층 도산홀 그리고 지하 1층 대성홀, 지하 2층 점진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서 도산홀은 전시관 ・ 영상실 ・ 자료실로 쓰이고, 대성홀은 사무국과 도산사상연구회실, 점진홀은 강당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기념관 소장품 대부분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유품과 관련자료입니다. 캘리포니아 오렌지 농장에서 찍은 사진, 각반, 상아 인장과 인장집, 주머니칼, 담뱃갑, 담뱃대, 재떨이, 유묵 3점 등 유품 71점과 신채호가 도산에게 보낸 서한 등 19점, 흥사단 등에서 활동할 때 작성한 문서 48점, 임시정부 사료집, 도산일기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위치

압구정 도산공원 산책로 코스가 비교적 단순해서 ‘도산 안창호 기념관’ 찾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압구정로데오역 도보 11분, 압구정역 도보 14분, 강남구청역 도보 17분 거리에 있습니다.
버스는 도산공원 (141, 3011), 영동소방파출소 / 호림아트센터 (4212), 일지아트홀 (142, 301, 351, 472, 2411, 4412, 9407, 9507), 일지아트홀/압구정노인복지센터 (145, 301, 351, 410, 440, 472, 2411, 4412, 9407, 9507) 정류장 이용하시면 접근하기 편합니다.
※ 위 괄호 안의 숫자는 ‘몇 번 버스인지’ 가리키는 것입니다.
도산 안창호 기념관 운영 시간은 평일 10:00 ~ 18:00 (오전 10시 ~ 오후 6시), 주말 11:00 ~ 18:00 (오전 11시 ~ 오후 6시) 입니다. 입장료는 ‘무료’로 누구나 관람할 수 있습니다. 해설 안내는 평일 문의 (02-541-1800), 주말 10:00 ~ 17:00, 단체해설 문의 (02-541-1800)로 모든 해설은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도산 안창호 기념관은 압구정 도산공원 안에 있으니, 주차장 주차 정보 궁금하신 분들은 도산공원 주차장 안내 글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사진
















도산 안창호
이제는 대한민국 이름으로 우뚝 선 이 나라에서 ‘독립’ 이라는 말은 잘 거론되지 않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교육을 통해 국민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의도는 비단 옛 일로만 취급하는데는 상당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계몽’이라는 측면보다는, 저는 ‘한 사람의 정성이 한 사람에서 베어나와 다른 사람에게 역시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영향력’을 두고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도생. 인간의 본성과 시대적 배경을 두고서 하는 말일 수 있지만 한 사람의 힘보다는 둘이 합친 힘이 클 수밖에 없다는 건 , 퇴사 이후 사업을 시작하면서 절실히 느낀 점입니다.
누군가를 함부로 바꾸고자 노력하는 건 위해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지배하겠다는 건 ‘욕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위한 의도가 간절한 노력을 바탕으로 한다면 ‘한 사람’을 넘어서는 영향력이 나타난다고 믿고 싶습니다.
도산 안창호 생애
성장과 구국운동기
1878년 11월 9일 :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도롱섬에서 안흥국의 3남으로 출생
1884년 : 평안남도 대동강면 국수당으로 이거.
1889년 : 부친 안흥국 별세
1890년 : 평양 남부산면 노남리로 이거, 서당에서 수학.
1892년 : 김현진의 문하에서 한학 수학, 선각자 필대은과 교류
1895년 : 상경 후, 밀러 학당 보통부 입학, 기독교 장로교 입교
1897년 : 밀러 학당 졸업
1898년 : 독립협회 가입, 관서지부 창립 발기, 평양 쾌재정에서 연설
1899년 :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점진학교 설립, 황무지 개간 사업
미주활동기 국내 신민회 활동
1902년 : 이혜련과 결혼, 1차 도미
1903년 : 샌프란시스코에서 ‘상항한인친목회’ 조직. 회장에 피선.
1905년 : ‘공립협회’ 창립. 초대 회장 피선, ‘공립신보’ 발간.
1907년 : 도쿄에서 태극학회 유학생들을 만나고 국내로 귀국, 비밀결사 ‘신민회’ 조직.
1908년 : 평양 대성학교, 마산동 자기회사, 태극서관 등 설립
1909년 : ‘청년학우회’ 조직.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배후 혐의로 피체. 2개말원만에 석방.
1910년 : 국외 망명, 중국 청도에서 독립운동가 회의 개최
1911년 : 재러한인사회 및 북만주 봉밀산 일대 순행, 2차 도미.
1912년 :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조직, 총회장 피선.
1913년 : ‘흥사단’ 창립
1917년 : 멕시코 한인사회 순방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민대표회의 대독립당 활동
1919년 : 3.1 독립선언 찬동 포고문 발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 및 국무총리서리 취임. 연통제, 교통국 설치. 임정 기관지 ‘독립’ 발간, 대한적십자회 결성 등. 통합임시정부 노동국총판 취임.
1920년 :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 조직
1921년 :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 발기
1922년 : 국내에 수양동우회와 동우구락부 통합 지시
1923년 : 국민대표회의 개최, 부의장이 됨. 대독립당 결성을 주장, 이상촌 건설계획 수립.
1924년 : 만주지역 답사. 남경에 동명학원 설립, 3차 도미
1925년 : 미주 동포사회 순방, 대동단결과 통일 역설
1926년 : 중국으로 돌아와 만주 길림 일대를 답사하여 이상촌 건설 추진
1927년 : 길림에서 유일독립당 결성과 독립운동의 장래를 위한 민중 연설 중 중국 경찰에 피체, 20여일만에 석방
1930년 : 상해에서 ‘한국독립당’ 결성
투옥 국내 활동과 서거
1932년 :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폭탄투척 의거로 피체. 국내로 압송. 4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복역.
1935년 : 대전형무소에서 가출옥, 지방순회 후 평남 대보산 송태산장 은거
1937년 : 동우회사건으로 피체, 서대문형무소 수감. 지병으로 보석 출감.
1938년 3월 10일 : 경성제국대학병원에서 서거.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
1962년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1973년 : 도산공원으로 묘소 이장.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사인 (사망 이유)
서대문형무소 투옥 후 고문 후유증으로 경성제국대학 병원에 입원했으나, 소화불량과 간경화, 폐질환 등 여러 질병의 합병증으로 출옥 직후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에도 도산 안창후 선생님 업적 정리
1. 독립협회와 공립협회 활동
– 19세 나이로 독립협회 가입, 평양에서 독립협회 관서 지부 결성. 좋은 연설과 탁월한 웅변으로 유명해지며 미주의 교민사회에서 공립협회를 만든 이후 사회세력 결집. 1902년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지만 동포들의 어려운 상황을 보고 공부를 포기하고 교민 지도에 나섬. 초창기 미국 교민사회 리더로서 공립협회 초대 회장이 됨.
– 1905년 4월 공립협회 창립 이후 2년 만에 총 600명의 회원을 모집, 3층 건물의 회관을 가지고 국내외 힘 있는 단체로 자라남.
2. 신민회 활동
– 민주 공화 국가 건설이라는 민족운동 목표와 독립전쟁 준비론이라는 국권 회복의 방법론과 신민회 조직 구상
– 안창호, 양기탁, 이승훈 중심으로, 이동휘, 윤치호, 이동녕, 이회영, 신채호, 이상재, 오천석, 남형우, 김립, 정재관, 장도빈 등 애국지사들의 구국운동을 비밀리에 지휘했던 신민회 조직.
– 1911년 105인 사건으로 강제 해산되지만, 독립운동에 큰 기여를 했던 기관
3.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 활동
– 1910년 통합 교민단체로 대한이국민회 결성. 북미 지방총회에서 시작한 지방총회는 시베리아, 만주까지 설립됨.
– 1913년 민족 운동의 간부를 양성하려는 목적을 가진 흥사단 조직.
– 1926년 5월 상해로 가서 좌우합작운동에 앞장섬
4. 임시정부와 국민대표회 활동
– 1919년 5월 말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총장에 선임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첫 각료로 취임해 국무총리 대리를 겸하면서 임시정부의 실체를 갖추는 데 전력을 쏟으심.
도산 안창호 명언 어록 1
1.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If the. truth is always pursued, justice always prevails somedays.
2.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Disappointment is the death of youth, and if the youth die, the nation will die too.
3.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Whether I eat of sleep, I do all consider for an act of the Korean independence. There will be no change as long as I live.
4. “오렌지 하나라도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Even picking an orange, be sincere and careful. It can be a part of working for the country.
5. “한국민족 전체를 개조하려면 그 부분의 각 개인을 개조하여야 하겠고, 각 개인을 다른 사람이 개조하여 줄 것이 아니라 각각 자기가 자기를 개조하여야 한다.”
If we are to reform the nation, we need to reform each one of us individually. No one else can make us achieve transformation, each of us must reform ourselves as individuals.
6.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
Why are there no great leaders among us? Because there are no people who try their best to be great leaders. Why do not they study and seek training to become leaders themselves?
7.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
Do not tell a lie, even if you die. Do not tell a lie even for a joke. Repent bitterly if you lost sincerity even a dream.
도산 안창호 명언 어록 2
8. 청년이 다짐해야 할 두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속이지 말자. 둘째, 놀지 말자. 나는 이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청년은 스스로 생각할 때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9. 그대는 매일 5분씩이라도 나라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10. 진정한 애국심은 그 말보다 그 실천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11. 남의 결점을 지적하더라도 결코 듣기 싫은 말이 아니라 사랑의 말로써 조언해야 한다.
12. 남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 해서 그를 미워하는 편협한 태도를 지니지 않는다면 세상에 화평이 있을 것이다.
13.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체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을 건전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14. 너도 믿고 나도 믿자.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자. 너도 주인이 되고 나도 주인이 되자. 공적은 ‘우리’에게로 돌리고 책임은 ‘나’에게로 돌리자.
15. 도서관은 학교요, 책은 교사다. 도서관은 엄격한 학교이고 책은 엄격한 교사이다.
16. 질서와 청결은 문명인의 자격이다.
17.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네가 하는 일을 정성껏 하라.
18.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하는 자보다 더 죄다.
19. 우리가 세운 목적이 그른 것이라면 언제든지 실패할 것이요, 우리가 세운 목적이 옳은 것이라면 언제든지 성공할 것이다.
20. 허황된 마음은 패망의 근본이요, 착실한 마음은 성공의 기초이다.
도산 안창호 명언 어록 3
21. 작은 일아도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그것이 곧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다.
22. 자기의 몸과 집을 자신이 다스리지 않으면 대신 다스려 줄 사람이 없듯이 자기의 국가와 자기의 민족을 자신이 구하지 않으면 구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바로 책임감이요, 주인 관념이다.
23. 나라가 없고서 한 집과 한 몸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받을 때 혼자만 영광을 누릴 수는 없다.
24.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란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즉, 일에 더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25. 만일 너도 한국을 사랑하고 나도 한국을 사랑할 것을 같으면 너와 나와 우리가 다 합하여 한국을 개조하자. 우리의 교육과 종교도 개조하고, 농업도 사업도 토목도 개조하고, 풍속과 습과도 개조하여야 한다. 음식 의복 거처도 개조하고, 도시와 농촌도 개조하고, 심지어 우리의 강과 산도 개조하여야 한다.
26. 세상의 모든 일은 힘의 산물이다. 힘이 적으면 적게 이루고 힘이 크면 크게 이루고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는 먼저 그 힘을 찾아야 할 것이다. 힘은 건전한 긴격과 공고한 단결에서 난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믿는다. 그러므로 인격 훈련과 단결 훈련 이 두 가지를 청년 제군들에게 간절히 요구하는 바이다.
도산 안창호 명언 어록 4
27. 인간 사회는 유정한 사회와 무정한 사회로 구별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무정한 사회다. 우리나라를 무정한 사회에서 유정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정의 돈수’에 힘을 써야 한다. 정의는 친애와 동정의 결합이다. 곧 사랑이다. 돈수는 두텁게 갈고닦는 것이다. 즉, 정의 돈수는 사랑하기 공부다. 친애하고 동정하는 것을 공부하고 연습하여 두텁게 하자는 것이다. 정의 돈수, 우리 국민의 사활이 여기에 달려있다. 우리는 정의를 기르기 위해 다음 일곱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가. 남의 일에 개의치 말라.
나. 개성을 존중하라.
다. 자유를 침범하지 말라.
라. 물질적 의뢰를 말라.
마. 정의를 혼동하지 말라.
바. 신의를 확수하라.
사. 예절을 존중하라.
28.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이 인물이 될 공부를 하지 않잖는가.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자가 되라.
29.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차가운가? 훈훈한 기운이 없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30.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나와 다른 의견을 용납하는 아량이 없고 오직 저만이 옳다 하므로 그 혹독한 당쟁이 생긴 것이다. 나도 잘못할 수 있는 동시에 남도 옳을 수 있는 것이거든 내 뜻과 같지 않다 해서, 사문난적이라 하여 멸족까지 하고야 마는 것이 소위 사화요 당쟁이었으니 이 악습은 아직까지도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사상의 자유는 존중하되 우정과 존경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 무릇 문명국민으로서의 덕목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 천 만 가지의 의견이 대립하더라도 오히려 우정과 민족적 우애만은 하나일 수 있으니 사상의 대립 또한 서로 연마 발달하는 자극이 될 수 있고, 서로의 존경과 애정은 민족 통일을 묶는 실이 되어 안으로는 이런저런 의견 대립이 있다 하더라도 전 민족의 운명이 달린 일에 대해서는 혼연이 하나가 되어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도서
1. 안도산전서, 저자 주요한, 출판 흥사단출판부
2. 도산 안창호, 저자 이광수, 출판 범우
3. 도산 안창호 이야기, 저자 윤지강 (글) 원유미 (그림/만화), 출판 아이들판
4. 민족의 스승 도산 안창호, 저자 안병욱, 출판 북스타
5. Why? People 안창호, 저자 김윤수 (글) 신정훈 (그림/만화) 윤재웅 (감수), 출판 예림당
6. 도산의 희망편지, 도산안창호선생 기념사업회
약력
구세학당 (경신학교) 졸업
독립협회 회원
만민공동회 개최
강서 점진학교 설립
신민회 설립
평양 대성학교 설립
대한인국민회 초대 총회장
흥사단 설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동총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대리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국민대표회의 주비위원회 위원
국민대표회의 부의장
난징 동명학원 설립
한국독립당 창당
대중매체
1. 1959년작 영화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1968년작 영화 ‘상해 임시정부’, 1972년작 ‘의사 안중근’ 배우 강계식 배역
2. 1969년작 영화 ‘춘원 이광수’ 배우 겸 감독 전창근 배역
3. 1979년작 KBS-TV 8.15 특집극 ‘대한국인’ 배우 민지화 배역
4. 1979년 KBS-TV ‘일요사극 맥’ ‘벼랑 위의 파수병 (2부작)’ 배우 안대용 배역
5. 1982년작 MBC ‘거부실록 : 백산 안희제’ 배우 홍중기 배역
6. 1982년작 MBC 8.15 특집드라마 ‘한 : 단재 신채호 일대기’ 배우 한인수 배역
7. 1984년작 MBC 드라마 ‘조선총독부’ 성우 정승현 배역
8. 1985년작 KBS1 국군의 날 특집드라마 ‘전웅실록 : 오성장군 김홍일’ 배우 이순재 배역
9. 1989년작 MBC 특집드라마 ‘백범일지’ 배우 이묵원 배역
10. 1992년작 MBC 광복절 특집드라마 ‘춘원 이광수’ 배우 정욱 배역
11. 1995년작 KBS 광복 50주년 기획드라마 ‘김구’ 배우 민욱 배역
12. 2018년작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22회 배우 박정민 배역
마지막으로 그 분의 말씀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도산 안창호 어록 비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
도산 안창호 호의 ‘도산’ 뜻
미국 유학길에 오른 24살의 안창호 선생님은 태평양의 하와이섬을 보며 스스로 호를 ‘도산’으로 붙였습니다. 섬에서 태어나 유난히 섬을 좋아해서 섬 ‘도’자와 금수강산의 ‘산’을 따서 지었습니다. 그 이름을 따라 이름이 생긴 공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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